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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 기준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는 게 주제였다. 공감했고, 빠져 들었다. 둘째를 임신한 채 AICPA(미국공인회계사 자격증)를 준비했다. 10개월 만에 자격증을 손에 쥐었다. 그렇게 노력해 온 그녀에게 직장 상사 대환대출상품 는 어느 날 말했단다. "당신은 왜 이렇게 욕심이 많아? 여자는 남자의 갈비뼈로 만들었다는 거 몰라요? 여자는 남자를 못 이겨요. 더군다나 MBA 출신도 아니잖아. 커리어에 욕심 내지 말아요." 증권사 애널리스트로 눈을 돌린 이유가 됐다. 만삭의 몸으로 AICPA를 딴 그의 이야기를 다룬 기사를 눈 여겨 본 상사가 초짜 후순위대출 애널리스트 지원자를 뽑았다. 밤낮 없이 일했다. 돌아온 건 수근거림이었다고 했다. "PPT 준비를 위해 늦게까지 일하면 '애 엄마가 집에 안 가. 애를 돌보지도 않나 봐. 독한 여자야' 그러더라고요." 평가 절하에 주춤댔지만 멈추지는 않았다. 2006년 그는 2분기 LG전자 적자를 유일하게 예측한 애널리스트가 됐다. '족집게 적중'에 대해 그는 당시 언론을 통해 "LG전자와 LG필립스LCD를 같이 연구하는 애널리스트가 거의 없다. 두 종목을 같이 분석하기 때문에 예측이 가능했다"고 밝혔다. LG 디스플레이로 이직할 때도 난관이 있었다. 임원이 아닌 팀장직을 제안 받았다. 연봉이 큰 폭으로 줄어드는 조건이었지만, 그럼에도 감수했다. 그 때 인사를 담당했던 선배가 해준 조언, '애널리스트는 혼자 일하는 사람이라 조직을 운영한 경험이 없지 않나. 그런 상황에서 임원으로 나섰다가는 적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일도 못할 수 있다. 그러니 낮게 와서 리더십을 증명하라'에 스스로 납득했기 때문이었다. "사안에 대한 팩트의 정확성, 팩트에 대한 해석, 설득력이 떨어질 경우 끊임없는 연관 질문을 통해 스스로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팀원들과 반복했다고 한다. 2014년 그는 한국 IR협의회 'Best IRO'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 후 '최초'를 직함 앞에 다는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는 어느새 180명의 팀원을 이끄는 리더가 돼있었다. 시멘트 천장을 딛고 올라서게 한 '한 끗', 공감 지능 ▲ ?2017년 신입사원 특강 강사로 섰던 김희연 LG디스플레이 상무. ⓒ 김희연 시멘트 천장을 딛고 올라설 수 있었던 '한 끗' 그는, 공감 지능이라 설명한다. "영문과 출신 은행원, 문과 출신 IT 애널리스트, 금융권 출신 제조회사 팀장으로 전직하면서 늘 열등감에 싸여있었어요. 모르는 거 투성이였으니까. 그랬기에 계속 질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건 왜 이렇지, '왜'가 공감이 안 되면 나아가 지지가 않더라고요." 납득하기 위해 물었다. '왜'의 꼬리에 꼬리를 물다보면 '전략적 통찰'에 도달하게 된다고 했다. 이를 위해 "먼저 사람을 봤다"고 했다. "'2000년대 초반, LG에 'PDP 분야를 매각하라'는 간 큰 리포트를 냈어요. 경북 구미에 디스플레이 부품 업체들이 모여있는데 만나 본 사장님들이 모두 '우리의 성장 전략은 LCD'라는 거예요. 왜 일까. 묻고 물었더니 소비자는 PDP와 LCD의 차이를 명확히 인지하기 어렵고, 그럴 때 결국 '원가 경쟁력'이 답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됐어요. '왜'라는 질문 없이 따라가기만 해서는 선도할 수 없어요. 결국 LCD 기술이 승기를 잡았고 PDP는 사라졌죠." 이렇게 그는 "'일상의 신호'를 읽으려 했고, 이를 '시대의 변화'를 읽는 눈으로 키웠다. 이후 '본질을 재정의' 하며 문제의 해결책까지 내놓는 단계"를 반복했다. 이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여자라서 예민하다"는 평가는 "예리하다. 촉이 있어 화두를 바꿔준다"는 것으로 변해갔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디딤돌'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사람들의 관점에서 문제를 이해하고 그들의 원하는 것과 불편을 읽어내려고 노력했다. 내 성공의 핵심은 사람을 들여다보고 공감하며 답을 찾아가려는 태도에 있었다."(김희연 저 <공감 지능 시대> 중. 관련기사 : LG그룹 만년 상무를 전무로 승진시킨 결정적 질문, 이렇게 나왔다) 다음은, 지난 9일 만난 김 전 전무와 나눈 일문일답 정리본이다. LG그룹 '최초' 여성 CSO "예민하다 평가가 '예리하다'로 바뀐 순간은..." ▲ ?김희연 전 LG디스플레이 전무. ⓒ 김희연 - 책 표지에 세미콜론(; 쌍반점)이 있다. 세미콜론은 '연결'을 위해 쓰는 문장부호인데, 일을 하면서 연결을 통해 답이 떠오른 경험이 있나. "2000년대 초반, 애널리스트 일을 할 때였다. 당시 LCD(액정 디스플레이)는 대형화에 한계가 있어서 노트북에 많이 적용했다. TV는 PDP(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 기술이 대세였다. 그 때 PDP 분야를 매각하라는 간 큰 리포트를 LG에 냈다. 왜냐, 경북 구미에 디스플레이 부품 업체들이 다 모여 있었다. 업체분들이 모두 말하길 '우리 회사의 성장 전략은 LCD'라는 거다. 다만, PDP 고객사(LG나 삼성)에게는 비밀이었다. 그렇다면 이 분들은 왜 그렇게 판단을 했을까. 소비자는 PDP와 LCD의 차이를 명확히 인지하기 어렵더라. 소비자가 차이를 모르는 기술이라면 뭐가 답일까. 결국 원가 경쟁력에서 답을 찾게 되어 있더라. 그랬더니 '기술도 모르는 사람이, 기술로 PDP가 우위에 있다, 엔지니어도 아닌 주제에' 라는 평가를 받았다. 정말 욕을 너무 많이 먹었다. 회사의 미래를 준비하는데 기술과 스펙 데이터가 아니라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으로 판단하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것들이 '따라가는' 시대의 산물이었다. 추격이 중요하니 어떤 방향으로 갈지는 관심이 없는 거다. '왜'라는 질문 없이 따라가기만 해서는 선도할 수 없다. 당시에 이미 대만과 중국은 LCD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결국 LCD 기술이 승기를 잡았고 PDP는 사라졌다. 기술 혁신을 이룬 LCD로 100인치 까지 거뜬하게 만들어내는 시대가 됐다. 현재로서는 중국이 LCD의 종주국이 되면서 가격 혁신을 이뤘고, 기울어진 운동장 안에서 중국과 경쟁하는 건 너무 힘든 상황이 돼버렸다." -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답을 도출했다는 뜻인가. "늘 사람을 먼저 봤다. 그게 애널리스트로서 내 약점이라고 생각했다. 감성적으로 접근한다는 얘기도 참 많이 들었다. 그러다 40대 중반에 LG디스플레이에 왔다. 기술 하나에 목숨 거는 장인들과 일했다. 그 분들이 엄청난 성과라고 가져왔는데, 나는 구별을 못하겠더라. 그래서 '소비자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요' 물었더니 너무 충격을 받으시더라. '여자라서 너무 예민하다' 얘기도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예민한 건 맞지만, 변화에 예민한 거더라. 그래서 받아쳤다. '나는 작은 걸 보는 눈을 가졌다'고. 감성적인 것도 맞다. 왜냐, 소비자들은 기술을 공부하면서 쓰지 않는다. 단박에 '좋아'가 나와야 한다. 그런 소비자의 마음을 느끼는 감성과 직관이 있다고 되받아쳤다. 그리고 그걸 증명했다. 그러다보니 이제 '예리하네. 촉이 있네. 화두를 바꿔주네'라고 평가가 바뀌더라. 나중에는 엔지니어분들이 저를 불렀다. '우리가 이런 기술을 개발했는데 통할 거 같아?' 묻더라." - 그렇게 역질문이 들어오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인가. "LG디스플레이 입사하고 2~3년 뒤였다. 그 때 IR(Investor Relations.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기업 설명 및 홍보 활동을 하여 투자 유치를 원활하게 하는 활동을 의미) 팀장으로 입사했다. 처음 반응은 영업에서부터 왔다. 2주에 한 번씩 투자자와 토론한 내용을 정리해서 사내 보고서로 뿌렸다. 투자자가 애플 관계자를 만나고 와서 들려준 이야기들, 이를테면 '거기는 이런 고민들을 하고 있던데 너희는 준비하고 있니? 너희 기술에서 이런 게 부족해' 이런 걸 다 정리했다. 있는 그대로 담았다. 아는 척하지 않았다. 영업·상품 기획 쪽 담당자가 '이건 내가 못 들어 본 이야기인데' 하면서 반응이 오면, 그 얘기를 해 준 투자자와 연결 시켜줬다. 우리 경쟁사 뿐 아니라 '어느 자동차 회사가 이런 게 고민이래'라는 얘기를 전해 들으면 신기술 임원과 연결해줬다. 투자자는 '미래'를 관점으로 움직인다. 또 투자자들에게 정말 넓고 방대한 인맥이 있다. 팀쿡(애플 CEO)도 만나고 일론 머스크(테슬라 CEO)도 만나는 사람들이다. 투자자들은 우리에게서 들으려고만 하는데, 그럴 때 끊임없이 물었고 대신 나는 투자자들이 궁금해 할 만한 정보에 대한 '맥락'을 전달해줬다. 직접 판단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이 투자자들과 우리 회사 영업·전략·상품기획·신사업 담당자와의 고리를 만들어줬다. 이게 쌓이니 'IR이 무슨 인사이트를 줘'라고 했던 평가들이 '여기는 내가 몰랐던 세상과 연결해 주는 게이트웨이다'라는 말로 바뀌었다." - 팀장으로서 조직 문화를 바꾼 측면이 있다면. "투자 분야에 오래 있다보니 투자라는 개념 자체를 좋아하게 됐다. 직원에게도 '당신의 삶을 투자한 곳이 이 조직이다'라는 개념을 주지시켰다. 돈 받은 만큼만 일하자? 그건 내 삶의 중요한 시간을 비용으로 보는 태도다. 투자자면 대박을 내야지.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만나서 경험을 쌓아 나의 가치를 높여야지'라고 생각하게 되지 않겠나. '인생을 이 곳에 투자한 사람'으로 팀원들을 보면 하나하나 모두 대단한 사람이다. 온 인생을 바쳤는데, 온 우주가 온 것 아닌가. 그러니 들어주게 되더라. 뭔가 황당한 얘기를 해도 '무슨 맥락인지 나를 이해시켜줘'라고 말했다. 이런 관점이 사내 문화를 말랑하게 하고 소통이 잘되는 조직으로 만든 거 같다." "'애 엄마가 애도 안 돌봐, 독한 여자'라는 평가들... 주춤거리게 했지만" ▲ ?2023년 함께 일하는 팀원들이 제작해 준 '희연 이즈백' 소주병 스티커. ⓒ 김희연 - 성공 가도를 이어온 것 같은데, 그럼에도 책에 '유리 천장은커녕 시멘트 천장이라 불렀던 시대를 살았다'고 적었다. "유리창은 위가 보이기라도 하지 않나. 시멘트는 깜깜하다. 사실 여성 후배들이 나를 향해 말하는 것들이 나를 더 주춤거리게 했다. 애널리스트로 일할 때 다음날 PPT 준비를 위해 늦게까지 일하면 '애 엄마가 집에 안 가. 애를 돌보지도 않나 봐. 독한 여자야' 그러더라. 실적 발표 앞두고 밤새워 일하면 '이혼 했나봐'라는 수군거림이 따라왔다. 열심히 사는 나의 가족까지 평가 절하 당하는구나 마음이 아팠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내가 부족한가, 너무 이기적인가, 생각이 들면서 뭔가를 하려고 할 때마다 멈칫하게 될 때가 많았다. 일반 직원이라면 당연히 참석해야 할 저녁 자리에 '내가 가는 게 맞나' 갈등하게 되는 게 그럴 때였다. (이런 시간이 흐르고 나니) 아이들이 커서 날 응원해주더라. '직장 포기하지 않고 버텨줘서 고마워'라고 말해주더라. 나는 아이 알림장에 매일 편지를 썼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적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우리 애들이 '엄마가 늘 함께 있진 않았지만, 늘 나를 생각하고 사랑한다는 걸 알았어'라며 다 알아주더라." - 시멘트 천장을 뚫고 리더의 자리에 오르게 된 원동력은 '공감 지능'이라고 보는 건가. "공감은 따뜻한 마음이다. 그런데 '공감 지능'은 차가운 쪽이다. 내가 말하는 공감은 '왜'라는 질문을 통해 나의 경험과 사회의 경험, 조직의 경험을 관통하면서 각성하게 됨을 말한다. 무엇을 해야할지 해답이 보이면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다. 개개인의 마음을 다 알아주는 게 아니라 이 회사가 살아남기 위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나를 묻고, 이를 위해 개개인이 무엇을 원할까 들여다 보면 '내가 성장했으면 좋겠어'라는 바람이 있다. 이걸 알아채는 게 '공감 지능'이다. 여기에 '이기'가 필요하다. 자기중심이 뚜렷하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너무 잘 구분할 수 있다. 자기중심이 확실한 사람일수록 '내가 이걸 왜 해야지' 스스로 납득해야 할 테고, 내가 공감하고 나면 다른 것과의 연결 지점이 보이게 될 것이다." - 지금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는 질문은 무엇인가. "앞으로 30년 무엇을 하며 살아갈까를 묻고 있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게 뭘까 생각한다. 일단은 내가 갖고 있는 걸 뿌리고 싶다. 그걸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 시도해 보고 있는 건 AI 강의다. 퇴임 후 책 쓰고, 창업 컨설팅 등을 하면서 직원 없이 일하는 게 너무 힘들더라. 그래서 다섯 개의 AI를 가상의 팀원으로 꾸려 운영하고 있다. AI에게는 질문을 잘해야 한다고들 말하지 않나. 내가 겪어보니 지시를 잘해야 한다. 지시만 잘하면 한 달 정도 프로젝트로 돌려야 나올 수 있는 답이 쫙 올라온다. 개발자의 철학에 따라 AI도 각각 성격이 다르다. 증거주의로만 답하는 AI, 정서적으로 공감하는 언어로 리포트를 만드는 AI 등의 특징이 있어 내 필요에 맞게 쓴다. 그 경험을 살려 리더들에게 'AI에 잘 지시하는 법' 강의를 하고 있다. AI에 명확한 지시를 내려서 나오는 결괏값만 보면 높은 분들일수록 직원이 필요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내 강의 요점은 구조조정을 하라는 게 아니다. AI에게 시킬 수 없는 다른 일을 직원에게 시키라는 거다. 도출된 리포트를 갖고 현장을 다니면서 이게 맞는지 점검하고, 현장에서 느끼는 정서적인 인사이트를 갖고 조직에 시도해본다면 전혀 다른 조직이 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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